지난달 화성 융릉에 다녀왔습니다.
사적 제206호. 장조는 영빈이씨(暎嬪李氏)의 소생으로 1736년(영조 12)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나
정치싸움에 휘말려 영조의 진노를 얻어 뒤주 속에 갇혀 죽었다.
영조가 그에게 사도(思悼)라는 시호를 내리고 배봉산(拜峰山 :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) 기슭에 초장한 것을 1789년(정조 13)에 정조가 이곳으로 이장하고
현륭원(顯隆園)으로 명명하였다.
그 뒤 1899년 사도세자가 장조로 추존되면서 융릉으로 승격하였다. 경의왕후는 1815년(순조 15)에 죽어
그 이듬해에 융릉에 합장되었다.
정조는 사도세자의 아들로 1759년에 왕세손으로 책봉된 뒤 1776년에 즉위하여 24년간 재위한 뒤 1800년에 죽자 현륭원 동쪽에 초장하였다가
효의왕후가 1821년에 죽자 현륭원 서쪽으로 이장하여 합장하였다.